앵커: 인민군 입대가 한창인 북한 양강도의 젊은이들 속에서 한국 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습니다. 보위부의 지나친 통제가 한국 노래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양강도 사법기관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5일 “요즘 젊은 사람들 속에서 한국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죽은 사람이 배워준 노래’라는 별칭으로 공공연히 불리고 있다”며 “사법기관에서도 이를 파악하고 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한국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까지 ‘상등병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초모생(입영자)들 속에서 거리낌 없이 불렸다”며 “그러다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된 이후 더 이상 불리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던 이 노래가 다시 유행하게 된 것은 혜산시 보위부가 최근 처리한 한 사건 때문”이라며 “사건은 ‘인민무력절’인 4월 25일, 송봉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이 군 입대를 앞둔 동창생들을 불러 위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으나 이날 모임에서 술에 취한 한 졸업생이 친구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한국 가요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며 “이런 사실을 파악한 시 보위부가 다음날 아침 한국노래를 부른 졸업생을 체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혜산카리비료공장에 다니는 졸업생의 아버지가 함께 일하는 친구 5명과 즉각 시 보위부를 찾아갔다”며 “그는 아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친 사람은 자신이고, 자신은 이 노래가 한국 노래인 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동행한 그의 친구 5명도 이 노래가 한국 노래인 줄 몰랐고, 공장에서 일하던 박 씨로부터 이 노래를 배웠다고 증언했다”며 “하지만 노래를 배워주었다는 박 씨는 2022년 봄에 코로나로 사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어쩔 수 없게 된 시 보위부는 앞으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아버지와 아들을 석방했다”며 “문제는 석방된 아들이 보위부에서 풀려난 사연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닌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위부에서 풀려난 사연을 알게 된 주민들은 ‘우리도 한국가요를 부르다 걸리게 될 경우 죽은 사람한테서 배웠다고 하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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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7일 “보위부에서 있었다는 사건으로 요즘 한국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크게 관심을 받고 있다”며 “보위부 덕분에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이 배워준 노래’라는 제목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노래를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괜히 관심이 생겨 ‘죽은 사람이 배워준 노래’를 찾고 있다”며 “죽은 사람이 배워주었다는 얘기에서 ‘이등병의 편지’는 ‘죽은 사람이 배워준 노래’로 제목이 바뀌어 전해지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이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주민들은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라면서 한국노래 단속에 혈안이 된 보위부를 조롱하고 있다”며 “5월은 초모가 한창인 때여서 젊은이들만 아니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이 노래에 관심이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단속 느슨해지면 한국영화, 음악 다시 유행할 것”
그러면서 소식통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나온 후 주민들은 단속을 피해 한국영화와 한국노래를 모두 깊숙이 감추었다”며 “하지만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단속만 느슨해지면 언제든지 한국영화와 한국 노래가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